안녕하세요^ㅡ^ 후배님들..!
저는 성운보컬 1기이자, 현재 한양여자대학 실용음악과 (보컬전공)에 재학 중인 27살 조인희입니다.
우리 후배들에게 들려줄 얘기라..
과연 무슨말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해야하는지.. ^ㅡ^;; 고민이 많았습니다.
음, 먼저 간단히 저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현재 휴학 중입니다.
휴학의 목적은... 실은 버클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버클리는 미국 대학이기 때문에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이 되지요;;^^
그래서 이번 7월말에 일단 어학연수를 떠나구요~ 내후년에 버클리로 입성할 계획을 가지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만학도입니다. 하지만 음악을 늦게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19살, 동아방송대 영상음악과 합격을 했구요.
2008년에 또 한번 동아방송대 영상음악과에 합격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가지 26년을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꿈(인생의 목표)가 바뀐 적이 없었습니다. 바로 여러분의 꿈이죠^ㅡ^
단순히 가수라고 표현하고 싶진않습니다. 노래하는 사람.
좀 더 구체적이자면 타이타닉 OST같은.. 전세계인이 모두 감동한, 그런 나의 음악을 하나 가져보고 죽는 것입니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죠.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것이 너무 좋았고, 그렇게 인정도 받았고..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가지도 합창부와 밴드활동, 고등학교때는 여러 오디션에도 합격해서
여러분이 모두 알만한 대형 기획사에 연습생으로도 2년간 있었습니다. 그것이 벌써 10년 전 일이네요..^ㅡ^
그런데 왜 이제야 학교에 들어갔냐구요..?
왜 이제껏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냐구요..?^ㅡ^
요즘 어린 학생들은 이해가 될른지 모르겠습니다만..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가 첫번째 그 이유입니다.
저희 때만해도, 아니 저만해도 그 당시 부모님이 매우 엄하시고 무서웠습니다.
부모님과 말 한마디 제대로 못했었으니가요. 그러니 오디션도 밴드 활동도..
모든 것을 부모님 모르시게 다녀야 했고, 동아방송대 입시도.. 너무 하고 싶은 마음에
이것밖에 없다!.. 저지르고 보잔 심정으로 일부러 속이고 진행을 했던 것이지요.
대학에 합격을 했고, 당시 핸드폰이 보급화되진 않았던 시대였기에...
집으로 걸려온 학교의 전화를 우연히 어머니께서 받으시게 되었고. 저는 집을 나왔고.. ㅋㅋ
그 당시에는 웃을 일이 아니었죠.
당시 엄하디 엄했던 부모님은 저를 시골의 외딴 학교에 2차 추가모집으로 소에 코뚜레해서 끌고가듯히..
저는 그렇게 2년간 전북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희망이 이었죠..
그 외딴 곳 낯설었던 시골마음의 학교가 지금은 여러분이 꿈꾸시는 대학 중 한 곳이었어요^ㅡ^
바로 백제예술대학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실용음악과가 있을 죽이야...
지금 백제예대가 그래도 어느 정도 인지도는 있잖아요?
그때는 논과 산중턱에 덜렁 서 있는 정말 귀신 나올 것 같은 그런 학교 같지 않은 학교였습니다. 하지만 말이죠..!
학생들끼리 그 시골에 뭉쳐놓으니까.. 매일 밥먹고 술먹고.. 할것이 없으니,
학교에 올라가 밤새도록 함께 노래하고 합주하고, 노래하면서 술마시고..ㅋㅋ
그렇게 2년을 놀고 나오니, 실력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달라져 있더군요.ㅋ
아, 저는 백제예대 실용음악과를 졸업한 것은 아닙니다. 광고창작과를 졸업했습니다.
하지만 광고창작과 동기들은 사실 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길에서 스치고 지나가면 모를 정도로..
음악에 미쳐있던 저와 실용음악과 학생들과 잘 맞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저희 과에서도 저에게 실용음악과 학생이라고 놀리곤 했습니다.
졸업을 하고, 부모님 등살에, 남들 들살에.. 그리고 저의 부족한 용기에..
이벤트 회사와 광고회사, 작은 엔터테인먼트, 작가, 그리고 커피전문점 매니저까지.. 몇년에 걸쳐 전전했고..
음악의 맛을 한시도 잊을 수 없었던 저는 어떤 일을 해도 오래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돌아가고 싶었기에, 다시 시작하고 싶었기에.. 무대에서 다시 노래하고 싶었기에..
그러던 중 성운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지금처럼 큰 아카데미는 아니었구요..
노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통해 실력있는 보컬 트레이너로 유명하셨습니다.
수소문하여 번호를 알게되어 전화를 드렸고, 한번 찾아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찾아가게 되었지요.
가자마가 생각지도 못했던 오디션에서.. 지금 돌이켜 보면 저에게 인생의 전화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긴장을 하다하다 못해 심장소리가 선생님한테 까지 들릴 득한.. 정말 미칠 것만 같던 오디션..
그 약 5분 간을 막 끝내고.. 선생님께서는 한마디 하셨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가르쳤던 제자들만 1000명이 넘는데,
너는 그의 50안에 꼽는다. 아니 30명 안에 꼽는다." 하셨습니다.
"선생님 그런 저.. 합격인거예요..?" 어리둥절해 되묻는 저에게 선생님은 "아유 그럼! 당연히 너는 합격이지!! 말이라고 하냐"라고...
몇년 간 노래다운 노래를 전혀 하지 못했고.. 주눅도 들어있을 만큼 들어있던 저에게.. 선생님은
(지금 생각해봐도 선생님꼐서 그대 진심이셨을까.. 아니셨을까하지만.."ㅋ)
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큰 희망이고 용기였습니다.
그리고 성운원장님께 꿈이 그리던 보컬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제 나이 23살 때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2008년 동아방송대 입시를 볼때..!
"그래.. 시험이라도 한번 봐보자!"하는 심정으로 동아방송대 영상음악과에 지원을 했고,
또 그 추운날 입시를 치웠고.. 저는 합격을 했습니다. 그러나... 또 여러 사정으로 결국 학교에 등록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 다시한번 역심을 하고 한양여대 입시에서 합격했습니다.
그리 큰 기대없이 들어온 한양여대는 생각보다 상당히 좋은 학교였습니다.
한양여대의 수업방식이나 커리큘럼, 굉장한 교수진(손무현, 장혜진, 조규찬, 장혁, 에코..
그 외에 여러분들은 이름만 얘기해선 잘 모르는 이쪽에선 대단한 실력의 교수님들),
학교의 시설(기자제), 한양이라는 이름(추진력, 끝없는 후원), 서울의 한 중심가, 그것도 2호선에 있다는 것,
여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공학 못지 않은 학생들의 파워.. 대학 1년이 지나는 지도 모르게..
그렇게 재밌게 바쁘게 합주와 공연과 오디션과 시험을 반복하다 보니 시간이 후딱 갔습니다.
왜 휴학을 하고 학교를 그만 두냐구요?^ㅡ^ 저는 더 이상 나이를 지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동기들보다 약 7년이나 늦었는데.. 하루라도 빨리 꿈을 이루고 싶었기에..
1년을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음악에대한 욕심도 같이 커졌고..
눈이 높아지고, 시야가 넓어져 버클리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긴 것입니다.
사실, 조금도 건방진 얘기이지만, 이제 이 곳 학교에서 이루고 싶은 것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수님께 인정도 받았고, TOP도 해왔고, 장학금도 받아봤고, 이젠 더 튼 물에서 놀고 싶어졌습니다.
피부색이 다르지만 같은 음악에 대한 열정과 욕심으로.. 그 무안한 느낌과 감정들로 함께 합주하고..
공연하고! 생각만해도 가슴이 벅차 날아다니고 싶은 기분입니다.
후배님들 여러분들도 저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음악 안에서 열정을 나누는 음악입니다. 힘들고, 포기하고 싶고, 주변환경에 부모님에 친구에..
그런 시련과 고비는 누구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음악을 가슴에 품고, 그끈을 놓지않고 붙들어 끝까지 가는 사람이,
결국 성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느 때에는 과감한 판단이나 결단도 중요하겠죠?
성운 선생님만큼 여러분을 잡아주고, 여러분의 실력을 냉정하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분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여러분의 실력에 있어, 그것을 여러분이 지금은 상상할 수 도 없을 만큼 성장시켜 주실분도 없다고 생각하구요.
저 역시 정말 성운 선생님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실력을 제대로 발선시키고 또 그 모든 힘든 것들을 이겨오고 넘어올 수 있었다고 자신합니다.
문제는 여러분이빈다. 마인드 컨트롤!
선생님게서 가릋펴 주시는데로, 이끌어주시는데로, 그렇을 바탕으로 열심히 성실히 연습하고 끝까지 노력하는것,
그렇게만 한다면 정말 언젠가 여러분이 이루고 싶은 그꿈을 이울 있을 것이라고 감히 얘기하겠습니다.
성운 선생님게 이 자리를 빌러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지금가지 지루한 제 이야기 읽어 주셔서서 감사합니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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