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헤드 첫 내한공연, ‘어느 30대 록키즈 두 명의 눈물’
지난 27일 오후 9시30분. 2012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주공연장인 ‘빅톱스테이지’는 어둠과 적막에 휩싸였다. 리조트 잔디구장에 꾸며진 객석에는 3만5000명이 넘는 관객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주최측이 바리케이드로 공연관람 관객과 이동관객을 분리했지만 곧 이동통로 역시 공연을 보려는 관객들로 가득했다. 심지어는 잔디구장이 굽어보이는 언덕에도 관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모두 20년 만에 처음 내한한 밴드 ‘라디오헤드’를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올해로 알게 된지 16년째가 된 두 명의 록키즈(Rock Kids) 이필환씨(33), 윤성렬씨(32)도 이 자리에 있었다. 라디오헤드 마니아인 두 사람은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 라디오헤드가 출연한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여름휴가를 페스티벌 기간에 맞추기로 결심했다. 3일에 20만 원이 넘는 표 값도 이들에겐 큰 문제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학창시절과 20대를 휩쓴 밴드의 공연을 직접 본다는 희열 만이 이들의 얼굴에 가득했다.
이윽고 라디오헤드가 ‘노멀 인트로 뮤직(Normal Intro Music)’을 시작으로 공연을 시작했다. 이들이 자리를 잡은 스탠딩석 앞쪽 자리에는 어깨를 제대로 펴지 못할 정도로 많은 관객들이 들어찼지만 이들의 표정은 모두 행복했다. 이씨와 윤씨도 이 무대를 감격스럽게 지켜봤다. 윤씨의 눈시울은 어느샌가 촉촉히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머릿속은 라디오헤드를 처음 만났던 16년 전 그림이 생생한 사진처럼 떠올랐다.
세계적인 록그룹 ‘라디오 헤드’가 27일 지산밸리록 페스티벌이 열린 이천시 마장면 지산포레스트리조트에서 멋진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박민규기자
두 사람은 서울 경복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6년 처음 만났다. 배우 왕주셴(王祖賢)을 좋아했던 둘은 자연스럽게 영화 <천녀유혼> 이야기를 하며 서로 알아봤다. 음악도 즐겨 듣던 그들이었기에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1996년은 90년대 대중음악의 위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 4집 음반을 발표할 당시였으며, 1995년 개국한 케이블채널 엠넷을 비롯해 MTV 등 많은 음악전문 방송으로 뮤직비디오가 음악을 구성하는 큰 요소로 떠올랐다. 그들은 마음에 드는 노래가 나오면 라디오에 카세트를 꽂아 녹음하기도 하고, 교보문고나 상아뮤직, 향뮤직 등 지금은 사라져간 음반매장을 돌며 음반을 구하는데 열을 올렸다.
세계적인 록그룹 ‘라디오 헤드’가 27일 지산밸리록 페스티벌이 열린 이천시 마장면 지산포레스트리조트에서 멋진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박민규기자
라디오헤드도 그 즈음에 이들의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역시 두 사람을 끌어들인 것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라디오헤드의 노래 중 하나인 ‘크립(Creep)’이었다. 1992년 발매되고 1993년부터 전 세계에 돌풍을 일으켰던 이 음울한 사랑 노래는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과 그 여인을 갖고 싶은 초라한 자신의 처지를 처절하게 읊조리는 내용이다. 두 사람은 라디오헤드를 통해 전에는 겪지 못했던 음악을 통한 황홀경을 봤다.
“음악을 들으면서 운 적이 라디오헤드가 처음이었어요. 2집 앨범 <더 벤즈(The Bends)>의 마지막 수록곡인 발라드곡 ‘스트리트 스피릿(Street Spirit)’이었습니다. 사춘기 시절이니까 감성적인 노래가 무척이나 끌렸어요.”(이필환)
90년대 록키즈들은 그 앞의 80년대 록키즈들과 이후 2000년대 록키즈들과는 달랐다. 이른바 ‘백판’으로 불리는 해적판 LP와 음악다방에 몰입하던 80년대 록키즈에 비해 90년대 록키즈들은 카세트와 CD 그리고 MP3를 고루 경험한 세대였다. 그리고 뮤직비디오의 위력을 처음으로 체험한 세대였다. 주로 음원으로 간편하게 음악을 소비하는 2000년대 록키즈와 다르게 그들은 힘들여 구한 한정판, 수입판 음반을 정성스럽게 보관하는 나름의 낭만도 있었다.
록 음악 매니아들이 27일 이천시 마장면 지산포레스트리조트에서 열린 2012 지산밸리록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보며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 사진 박민규기자
지산밸리록 페스티벌이 열린 이천시 마장면 지산포레스트리조트에는 2박3일 동안 음악을 즐기려는 매니아들의 텐트가 빽곡히 들어차 있다. 사진 박민규기자
‘록키즈’ 윤성렬씨(왼쪽)와 이필환씨가 27일 지산포레스트리조트에서 열린 2012 지산밸리록 페스티벌에서 라다오헤드 공연을 보고 즐거워 하고 있다. 사진 박민규기자
1999년 인천 송도에서 열린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은 단독 공연 위주로 진행되던 록 공연의 흐름을 바꿨다. 트라이포트 페스티벌은 현재 펜타포트 록페스티벌로 발전돼 관객을 맞고 있다. 지산 공연과 펜타포트 외에도 부산국제록페스티벌, 렛츠록페스티벌, 그린민트 록페스티벌, ETP페스트 등 다양한 축제 형태의 공연이 매년 여름 열린다. 이씨는 99년 당시를 떠올리며 “딥 퍼플(DeepPurple), 드림씨어터(Dream Theater), 프로디지(Prodigy),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애쉬(Ash) 등이 찾았던 그 규모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쉼 없이 흐르는 세월은 “평생 음악만 듣고 살겠다”던 이들을 어느새 직장인으로 내몰았다. 라디오헤드의 앨범 표지를 보고 예술적 영감을 받았던 이씨는 현재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그리고 윤씨는 여의도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다. 이들은 평소에도 종종 LP카페나 음악카페에서 만나 과거의 열정을 나누곤 했다.
“20대 때는 어느 하루도 음악과 함께 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그런데 일을 하다보니 점점 듣는 빈도가 줄어들고 이제는 음악을 듣지 않는 사실을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됐어요. 생활인이 된 거죠. 그래서 라디오헤드의 내한이 더 의미가 있었어요. 처음 내한 소식을 들었을 땐 ‘표값이 100만 원쯤 하더라도 가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까요.”(윤성렬)
27일 페스티벌 첫 날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라디오헤드는 당초 계획됐던 1시간40분을 훌쩍 넘어 2시간이 넘는 공연을 하고 무대를 내려왔다. 공연을 끝나고 만난 윤씨의 눈가는 충혈됐고 이씨는 윤씨의 모습을 놀리며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그들은 그날 벅차 오르는 감격을 떨치지 못하고 밤을 하얗게 밝혔다.
라디오헤드는 그들의 2012년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고 갔다. 그들에게 한때는 우상이었으며, 한때는 열정이었고 또 한때는 추억이었던 라디오헤드는 지금 그들에게 현재이자 열정을 다시 발견해준 촉매제, 즐거운 인생을 살아갈 동반자다. 그들은 “여한이 없다”면서도 “혹 U2가 내한한다면 영혼도 팔겠다!”며 다시 맥주잔을 들었다.
<이천|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출처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1207291521163&sec_id=540301&pt=nv
성운보컬의 시선으로 보는, 지산 밸리 락 페스티벌
이번 록페스티벌에는 세계적인 록 밴드인 라디오헤드(Radiohead)가 첫 내한공연을 가져 그 열기가 더 뜨거웠다.
라인업(출연 뮤지션)도 다양하고 화려했다.
라디오헤드를 비롯해 제임스 블레이크, 스톤로지스, 아울시티 등 유명 해외 뮤지션들 뿐 아니라
들국화, 이적, 버스커버스커 등 국내 뮤지션들 역시 세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실력파 뮤지션들이 줄을 이었다.
낮 최고 기온 34도의 폭염에도 뮤지션들과 관객들은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폭염보다 더 뜨거운 열기를 발산했다.
하지만 이번 역시 교통마비, 주차대란, 셔틀버스 지연 등 풀리지 않는 난제는 아쉬움을 자아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보완하여 보다 앞, 뒤 면으로 완벽한 공연이 되길 바란다.